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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의 “우리 역사의 이해”를 듣고

       

      3월 12일 국제회의실에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사회자인 계산과학부 김대만 교수의 즉석 요청에 따라 도올 선생은 이날 오후 4시까지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려주었다. 그의 강연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에 적용된 논리가 불교에서 유교로의 이념 전환이었음을 지적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지식인들의 집단 사회 지배체제를 이상국가로 지향하는 신권과 이를 견제하는 왕권의 긴장관계가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음을 상기하고, 왕권과 신권을 지탱하는 관료조직의 부패를 갈파한 뒤, 이 보수 관료조직의 부패와 독선․폐쇄성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강연의 핵심은 도올 선생의 거시 역사학에 대한 경험과 함께, 이 보수 관료집단과 대립해 온 개혁세력의 이념을 이해하는 데에 있지 않았나 한다. 그는 개혁 세력이 등장한 근세사의 예를 세 가지 들었는데,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과 조선 말기의 동학혁명, 그리고 최근의 참여정부의 등장이 그것이다. 유교의 이념에 지극히 충실했던 조광조와 사림의 개혁세력은 비록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학문적 성취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로 이어지며 한국 주자학의 극성기를 이룩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학문적 담론의 화두로 삼았던 문제는 이(理)와 기(氣)의 일원론과 이원론이었다. 도올 선생은 이와 기의 독자적 정체가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사유행태 자체가 이미 서양적이며, 동북 아시아인의 고유한 사유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독교의 유신론과 불교의 무신․무존재론의 차이점, 동서양의 언어체계에 드러나 있는 주어+술부의 차이점 등을 예로 들면서 동양적 세계 인식은 현상과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게 돼 있는데 반하여 서양에서는 초선험적․절대적 존재와 불변의 세계가 가정되지 않으면 세계 인식과 기술이 불가하게 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이 지적은 과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자연이라는 객관적 실체를 대상으로 그것을 지배하는 절대적 법칙과 모형을 찾고자 탐구하는 현대의 주리론적 서양과학의 사조는 근본적으로 동양인의 사유체계에 이질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칙이란 다양한 자연현상을 지켜보는 이성적 인간의 합리적 개념 조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발현 그 자체인 “현상”을 기술하는 동양적 이해 체계는 무엇일까? 이것은 도올 선생이 고등과학원의 과학자 모두에게 나누어 준 과제이다.

      이번 강연은 고등과학원으로서는 국제회의실에 최대의 청중이 모인 행사가 되었고, 도올 선생에게는 최대의 지식인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되었을 것이다.

       

      2004.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