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과 학생들에게
| 오늘은 내가 정든 교정에 교수로서 자리를 지킨 마지막 날입니다. 내가 여러분처럼 천문학에의 꿈을 안고 서울대에 들어와 학부생,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로서 있은 지 어언 25년이 되었습니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며 부쩍 자란 교정의 나무들, 벤치, 그 사이로 난 익숙한 골목들을 평생 접하며 살아 갈 수 있다는 점을 늘 다행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학업과 고락을 함께 하던 선후배와 당시의 은사님들을 동료 교수로 모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왔습니다. 똑똑하고 열심인 서울대의 후배들을 제자로 두고 강의와 논문지도를 할 수 있었던 일은 내가 교수로서 지낸 지난 12년 동안 누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개인적으로 뜻한 바가 있어 고등과학원 물리학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임기 전에 학과를 떠나는 모습이 학과 이미지에 오해를 줄 수도 있기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특히 우리 학과의 학생들에게 나의 결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지 모르겠습니다. 또 나를 믿고 따라오던 지도학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학생 여러분에게 이렇게 글로나마 작별의 말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교내의 선생님들과 여러 학생들과 맺은 인연은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고등과학원으로 가더라도 한국과 세계의 천문학계 안에서 그 인연은 늘 지속될 것입니다. 또 고등과학원에서도 천문학이 움틀 수 있는 요람이 마련될 것이므로 다 하지 못한 인연을 그곳에서 다시 맺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간 부족한 사람이 선생으로서 직분을 다 하지 못해 왔으나 내 마음은 그 이상이었고, 우리 학과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바라는 바대로 훌륭한 학자로 성장하기를 늘 기원해 왔습니다. 그러한 나의 기대와 믿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며 작별의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2003. 8.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