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타리를 벗어나


  여행을 다녀온 지가 꽤 지났다 이제야 정리를 할 생각을 한 것은 바빠서인지 아니면 게을러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호주의 천문대 두 곳을 다녀온 기행기를 써 볼까 한다. 호주의 천문대 하면 가장 유명한 AAO 천문대가 있다. 남반구에서는 아주 대단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 이 천문대는 호주 천문학의 수도라 불리는 NSW의 Coonabarabran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은 아마추어 천문인들도 스타파티를 많이 하는 곳이기에 꼭 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허나 시드니에서도 하루가 걸릴만큼 너무 멀기에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해서 .수도 Canberra에 위치한 Mt. Stromlo Observatory와 Sydney Observatory 두 곳을 가기로 했다. 아, 호주는 7개 정도의 국립 천문대가 있다고 한다. 찬찬히 일정을 따라가 보면.,..

7월 3일 아침.. 시드니에서 학교의 일정을 끝내고 이제 혼자 본격적인 여행을 할 차례였다. 오기 전부터 관측 계획을 세워서 왔건만 호주는 겨울인 관계로 우기란다. 해서 계속해서 비 오고 구름끼고 해서 Canberra에 갈 계획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하늘에서 도우셨는지, 모든 일정이 끝나니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남반구가 오존층이 파괴되서 햇살은 무지무지 따갑더만.. 여하튼 날씨가 갠 관계로 시드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이래저래 표를 사고 canberra행 버스를 탔다. 솔직히 Sydney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이미 일 주일 정도 돌아다니다 보니 얌전히 있고 싶어서, 조용하다는 수도 Canberra를 선택했다.

Canberra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해 보면 호주에는 큰 도시가 2000년에 올림픽이 열리는 시드니와 1956년에 올림픽이 열렸던 맬버른이 있다. 한창 두 도시가 서로 수도가 되기 위해 경쟁을 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두 도시 중간지점에 계획 수도를 짓기로 했다는데.. 해서 Canberra가 한 사람의 미국인에 의해서 완전히 계획적으로 만든 수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다지 큰 도시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조용한 도시인 듯 했다.

Stromlo 산 입구에서

그렇게 버스를 타고 Canberra에 도착해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유스호스텔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더니 피곤해서인지 바로 아침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평소에 아침 10시 30분에 일어나는 터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서인지 아침 8시에 일어나 버렸다. 간만에 느낀 상쾌함을 간진한 채 아침밥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서 드디어 Mt.Stromlo 천문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 쪽은 워낙 시골이라 대중교통도 없고, 나는 면허증도 없기 때문에 무작정 지도를 들고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지도상에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또 차로는 30분 정도 걸린다기에 열심히 자전거를 몰았지만 계속된 산길에 지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몰고 2시간 30분이 지나서 결국 Mt.Stromlo를 찾았다. 다시 자전거를 끌다시피 하면서 산 정상에 오르니 산 여기저기서 캥거루가 뛰어다니더군.. 너무 일찍 와서인지 조용했다. 여기 저리 망원경 돔이 있구, 공작실이 있구, 여하튼 산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첫인상이라면? 건물은 그리 폼나는 것은 없었고 모든 표지판이 영어인 것을 보니 외국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Mt.Stromlo 천문대의 캥거루

Visitor center에 들어가서 표를 사고 견학신청을 하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모랄까 전시관이라는 것은 항상 어린이를 위해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똑같았다. 그리고 본 것은 Slide show. 천문대의 연구원 같은 나이든 아저씨께서 친절히 천문대와 별 사진 slide를 설명해 주셨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 듣는 영어였지만 난 사진 보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실은 나도 쪼끔은 들었다우.

그렇게 slide show가 끝나고 나서 한때 잘 나간다던 74 망원경 구경을 하러 갔다. 돔 내부에 들어가서 아까 그 아저씨께서 설명을 자세히 해 주시면서 망원경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74 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 보현산 천문대의 1.8m 망원경보다 크네. 그런데 지금은 AAO 천문대의 망원경들이 더 잘 나간다고 하더군.. 물론 직접 관측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망원경을 본 것 만으로도 참 좋은 경험이었다. 그 후에 다시 visitor center에 와서 기념품을 샀다. 별을 주제로 한 학용품부터 장식품, 책, 놀이기구까지 참 신기하게도 많은 게 있었다. 아, 훌륭하다

. 74" 망원경 돔의 모습

74" 망원경

쇼핑도 마치고 바로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폼을 잡고 생각을 했다. 가장 느낌이 왔던 것은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 백순가? 그리고 우리나라보다도 큰 망원경을 갖고 있는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을 위한 시설 및 프로그램이 참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망원경도 볼 수 있구 말이쥐..

그걸 보면서 자꾸 우리나라에 울타리라는 것에 자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면서, 옆집이 이웃사촌이라고 하지만서도 대학이나 연구소나 그런 것들을 보면 아주 격리된 세상이다. 많은 일반인들이 별을 사랑하고 또 별을 보고 싶어하고 천문대에 가보고 싶어한다. 허나 가기가 무척 힘들 뿐더러 가봐야 실망만 할 뿐이다. 또한 정말 중요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든다. 동양 최대의 망원경이 대전에 생긴다고 하는 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동을 주고 편안함을 줄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립 천문대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면 그 안에 들어가기가 꽤(?) 힘들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Mt.Stromlo
                      visit center 앞에서

여하튼 Mt.Stromlo 천문대의 견학은 울타리가 없다는 느낌을 가슴에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 본래는 Sydney의 공해를 떠나서 별사진을 찍으러 온 생각도 있었으나 역시나 여기도 구름만 잔뜩 끼어 있기는 여전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이제는 다시 Sydney로.. Sydney에 5시 정도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이제는 Sydney 천문대로 바로 향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한 20분을 걸어서 도착한 천문대는 겉보기엔 그저 그랬다. 또한 입장 시간이 지난 관계로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허탈한 대답을 들었다. 저녁에 관측을 한다고 그 때 오라고 하는데..

여하튼 예쁘게 달이 뜬 모습을 보구서는 천문대랑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비를 챙기러 다시 숙소로 왔다. 적금을 깨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또 하나 구입하면서까지 이번 여행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 탓에 별사진 한 장이라도 찍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해서 아직 어두워 지지 않아서 내일이면 호주를 떠나기에 Sydney에서 가장 거한 저녁밥을 먹을 생각으로 식당에 찾아가서 고른 음식이 스파게티 솔직히 메뉴판을 보구서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이 스파게티 뿐이었다. 그렇게 거하게 먹구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천문대에 찾아갔다. 달이 뉘엿뉘엿 질라 그런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천문대를 둘러보면서 야간개장 시간을 기다렸다.

Sydney 천문대 모습

드디어 입장..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사정을 했다. 북반구에서 온 아마추어다. 제발 남반구 하늘을 보게 해 달라고 Sydney 하늘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안에 구경이라도 한 번 해 보고 싶었기에.. 근데 호주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결과 별로 신통치 않은 천문대라는 생각에 애당초 큰 기대는 없었지만 전시관을 둘러보면서부터 나의 생각을 확 바꾸어 버렸다. 전시관은 그냥 전시관이 아니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많은 전시관이 전세계 어디나 어린아이 수준을 못 벗어날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기에 충분했다.

전시품을 근사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천문대가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관계로 예전에 쓰던 망원경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전파망원경에 사용했던 집속기까지 골고루 진열해 놓았다. 보면서 흥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게 encke 혜성을 발견하던 망원경이라니 이게 퀘이서를 찾았던 전파망원경 꼭대기에 달려있던 기계라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펴보니 감탄해 마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그냥 오래 전부터 쓰던 것들의 모두 전시품이 되었고 가치를 더했다.

전시관을 쭉 둘러 보구 이제는 별을 보러 올러가자고 그런다. 해서 사람들과 함께 LX200 16 망원경이 있는 돔으로 올라갔다. 역시 연구원들이 설명을 해 주면서 각각의 대상을 찾으면서 사람들에게 어두운 밤하늘을 보여주었다. Jewel box랑 지구랑 가장 가깝다는 별 켄타우르스자리 알파별, 온하늘에서 가장 크고 밝다는 켄타우르스 구상성단 등등 많이 본 것 같은데 대상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남반구 별을 볼 수 있다는 데 기쁘기 바빴으니까.. 또한 사람들의 많은 질문과 관심에 또 한 번 부러웠다. 그 다음 코스로는 planetarium. 올해 축제 때 학교에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planetarium을 했던 것과 비슷해서 감회가 새로 왔다. 마지막으로 비디오 상영까지..

이렇게 해서 모든 코스가 끝났다. 총 비용은 호주 달러로 10달러였다. 우리돈으로 약 7000원 정도로 어떻게 생각하면 비싸보이는 것이었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추어 천문의 활성화를 위해 무얼 할까 하는 고민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별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울타리를 없애는 것이다. 아무리 공해가 심한 시내 한 가운데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밤하늘이 아름답다는 것이 보여주면 저절로 사람들이 별이 좋아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게 하면서 역시나 나름대로 폼나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까지 걸어왔다. 아, 오는 길에 DDR이 있길래 신나게 한 판 하고 왔다. 아직 호주에서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그 어설픈 발놀림에도 사람들이 놀라더군 ^^ 여하튼 그렇게 해서 호주의 마지막밤을 보냈다.

Sydney 천문대에서 본
                      야경

정리를 해볼까?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천문대를 다녀왔는데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면 역시 울타리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학교 드라마에서도 울타리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했었던 것 같은데 보편화라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울타리를 없애고 보여주면 저절로 나아지지 않을까 하네.. 물론 그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려면 당연히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잘만 된다면 아마추어 천문의 부흥 및 계속된 발전, 또 이어져 백두산에도 천문대를 짓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이만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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